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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대한 인간의 주관적인 경험은 지각의 왜곡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왜곡은 시계의 초침을 바라본 순간 느려지는 듯 보이는 멈춘 시계의 착각(stopped-clock illusion)처럼 한시적이며 미소한 사건들의 지각을 좌우할 뿐 아니라, 인간의 삶이 연속성을 지닌다는 생각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지대한 감정적 영향을 끼치는 사건은 죽음의 위기를 맞았을 때 스쳐 가는 주마등처럼 그 기간이 완전히 다르게 지각될 수 있으며, 나아가 저장된 기억의 내용과 선후 또한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시간에 대한 지각이 신경 인지적 착오의 영향 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간에게 해당하는 단 하나의 근본적이며 필연적인 사실은, 우리는 모두 삶에 끝이 있음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지가 바로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이 ‘슬프고 비참한 인간의 상태’를 다루며 언급한 개념이자, 인간과 다른 생명체를 구분하는 중요한 조건이다. 인간이 한정된 시간을 전제로 세상을 살아감에 따라 근본적이며 경험적인 긴장 상태가 발생하며, 시간을 정복하려는 동시에 시간에서 벗어나려 하는 인간과 시간 사이의 다소 모순적인 관계 또한 형성된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시간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시간에 대해 아무도 묻는 이가 없으면 아는 듯하다가도 막상 묻는 이에게 설명하려 하면 말문이 막히고 만다.
시간 개념의 복잡성은 일찍이 그리스 신화에서 크로노스(Chronos), 카이로스(Kairos), 이언(Aeon)이라는 세 명의 신을 통해 다뤄진 바 있다. 각각의 신은 시간이 경험되는 방식에 강력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크로노스는 측정할 수 있는 시간,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르는 선형적 시간을 의인화한 존재이다. 반면 제우스의 막내아들인 카이로스는 크로노스가 시간에 미치는 힘과 관성에서 벗어나, 평생 기억되는 특정한 순간, 사건, 혹은 개인적 경험을 제시한다. 사자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카이로스와 긴밀한 관계인 이언은 어떠한 사건이 이미 발생했는지 또는 미래에 발생할 것인지 명확히 말할 수 없는 시간, 즉 영원한 순환의 표상으로서의 시간 개념을 나타낸다. 인간의 구체적인 경험 속에서, 이처럼 서로 다른 시간들은 공존하고 중복되며 서로 얽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레이코드(GRAYCODE)와 지인(jiiiiin)의 전시 ≪Data Composition≫은 바로 이러한 복잡한 시간 개념과 시간의 비선형성을 시청각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기존의 시간 개념이 지닌 한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이다.
다수의 현대 철학자들은 시간의 전통적인 개념을 비판하면서도 이를 완전히 무시하거나 거부하지는 않으며, 연대기적 시간 그 자체를 바꿀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실제로, 물리적인 시간을 의도대로 조작하거나 과거와 미래의 시간 전후를 뒤섞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는 아직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이러한 지식에서 다음 질문이 제기된다. 그레이코드와 지인은 어떻게 시간이 없는 우주를 구현해 낼 것인가? 사운드, 영상, 데이터는 시간에 가장 의존적인 요소들이 아닌가? 인간의 뇌는 환경과 경험에 의존하여 미래를 예측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끊임없이 스스로의 예측을 향상시킨다. 이러한 과정은 실생활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는데, 최근 글로벌 서비스 회사들이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온라인 데이터를 수집하여 더욱 빠른 서비스와 정확한 예측을 제공하는 것이 그러하다. 이와는 달리, ≪Data Composition≫ 웹사이트에서 수집된 데이터는 예측을 위해서가 아니라 관람객들이 시간의 뒤얽힌 속성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사용된다. 작가들의 이러한 접근법은 전시의 메인 작품 제목인 ‘On Illusion of Time’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인간은 환상을 보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인간에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환상이 없다면, 가차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 자신이 조금씩, 천천히 사라지는 것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글. 정가희